좋은 글인데 두 플랫폼 모두 개발하신지 얼마 안되셔서 그런지 표면적인 부분만 짚으셨네요(저도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해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ㅋㅋㅋ ^^)

링크타고 블로그 가봤는데, 블로그 답들에도 반론들이 좀 많네요.

제가 보기엔 아이폰 개발은  UI 좀 띄어 보고 쉽군...하고 넘기신거 같은데..ㅋㅋ 제 착각 일 수도..
(apple이 인터페이스 빌더를 잘 만들어 놔서 UI틀 만드는게 쉽기는 한데..VC에서 resource editor로 UI껍대기 다 만들었다고 프로그램 개발 완료 되는거 아니잖아요? ㅋㅋㅋ)

암튼 약간은 편향된 의견이 있는 것 같아서 살짝 반론을 제기해서 균형을 맞춰 봅니다.




우선 아이폰 SDK는 개발하기 쉽다고 하시는데, 애플이 제공하는 기본 룰 을 따라 가는 정도는 조금 편하지만,

다양한 모델과 자료 구조가 필요한 어플을 짜다 보면, 메모리 관리가 쉽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잘 죽는다는 거죠.

일반 사용자는 모르는 kill switch 라는 어플이 백그라운드로 동작하고 있습니다. 이 어플은 자신만의 기준으로 앱들을 감시하고,

사용성을 해칠만한 이유가 앱에 발생하면 해당 앱을 죽입니다 ^^;; 무섭죠? 안드로이드도 유사한 기능이 있습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 SDK가 특이한 개념을 가지고 있어서 익히기 까다롭지만, 응용프로그램개발 경험이 있다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구요,

오히려 익힌다고 하더라도 이번 세미나에서도 언급 되었듯이 JAVA의 한계가 있습니다.

빠른 사용성을 위해서는 NDK(native c) 개발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군요.




머 각설하고, 개발자로서 이런 모바일 개발을 시도 해면서 얻는 것은 크게 네가지 정도 인 것 같습니다.

1.자아실현
2.공부..
3.인터넷 플랫폼 변화의 적응
4.재미?








1.자아실현은 잘 모르겠습니다. 머 앱이 성공하거나 유명해지면 좋겠죠 뭐...ㅋㅋ



2.공부의 측면에서 보면,

아이폰, 안드로이드 모두 모바일 환경과 사용자 손에 착 달라 붙는 UI 제공을 위해서,

SDK를 공부하게 되구요, SDK에는 특정한 프로그래밍 패턴들이 적용되어 있습니다.(아이폰 같은 경우는 delegate pattern이 전반적으로 적용됩니다) #참고 : http://camorlab.tistory.com/15

네 패턴 공부 됩니다~^^ 단순하게 SDK만 사용하려면 copy & paste& run & test 를 무한 반복 하면 어플은 어떻게는 만들겠죠?.ㅎㅎㅎ

그리고 안드로이드, 아이폰 모두 unix OS 위에  UI를 얹었습니다.

얼마전에 아이팟 터치를 해킹했는데 시스템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더군요, killswitch의 존재도 ps로 확인하고 남은 용량도 df 로 확인하고, 유닉스 환경 그대로 더군요.

그렇습니다. 현대 OS 구조에 대한 실용적인 접근으로 또한 공부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유닉스 환경에서 UI와 연결되는지에 대한 공부도 가능합니다(예전에 linux에서 X관련 개발을 시도하다가, "이걸 어따써..." 하면서 포기했었는데 이제는 좀 할만 하겠네요)



3.인터넷 플랫폼 변화의 적응

네...머 미래의 인터넷 환경의 주인이 모바일이 될지, 모바일이 된다고 해도 어플리케이션이 될지 브라우져가 될지, 아직은 서로 박터지게 싸우고 있으니, 알 수가 없죠. HTML5같은 하드웨어 지원을 포함하는 표준들이 자리를 잡으면, 어플리케이션 개발의 상당 부분을 흡수 하겠죠?..하지만 하드웨어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부분은 HTML5가 지원하기 어려울 수 있구요.그냥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이것저것 해보는 거죠. ^^



4.재미...
해보니...재미가 있네요. 손안에 실현되는 아이디어...손안에서 인터넷을 타고 국가의 장벽을 넘어 서로 연결되는 네트웍과 정보...그안에서 뭉실뭉실 떠오르는 또 다른 아이디어..
암튼 재미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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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6 11:30 2010/02/26 11:30
구글이라는 거인도 어쩔수 없이 3년차 벤처기업인 admob을 사들여서 모바일 광고 시장을 잡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모바일 광고 시장은 기존의 PC기반의 웹과 어떤 차이가 있을지 한번 분석해 보았습니다.

adm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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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8 18:13 2009/12/18 18:13
spc-1000 이야기가 나와서 국민학교 시절 등유 냄새 나는 컴퓨터 학원과 세운상가를 그리워 하다,

발견한 글 입니다.

2004년도의 글이지만,

글의 마지막 처럼...

꿈 꿀 수 있는 사람을 위한 사회는 언제쯤?

2009년도의 마지막인 현시점에서도 말입니다.









원문(http://www.zdnet.co.kr/ArticleView.asp?artice_id=00000039129860)


[류한석의 스마트 모델링] 8비트 PC의 황금기와 사라진 영재
류한석 (컬럼니스트) mrlonely@tlcsoft.com
2004.08.20 / PM 04:50

[지디넷코리아]며칠 전 필자는 18년 전에 알게 된 지인을 아주 오랜만에 반갑게 만났다. 그 분은 예전월간지 컴퓨터학습(마이컴) 출신의 기자였는데, 필자가 고등학생 때 컴퓨터학습의 PC CLUB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분이다. 당시 그 분은 20대 중반의 매력적이고 활기찬 여기자였고 필자는 컴퓨터에 미쳐있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서로 중년의 모습으로 얘기를 나누게 된 것이다. 그것을 계기로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서 몇 가지 사실을 정리하고, 언제나 필자의 마음에 담겨있는 안타까운 사실 하나를 밝혀보도록 하겠다.

1983년은 국내에서 PC가 처음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만들어지고 팔린 기점이 되는 중요한 해이며, 그 해에 중요한 컴퓨터 잡지들이 창간되었다. 필자 또한 1983년에 수학 선생님의 추천으로 우연히 PC를 접하게 되었고 컴퓨터학습, 웨어, 그리고 짧은 인생을 살다간 학생과컴퓨터 3가지 월간지를 창간호부터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보았었다.

FC-100으로 시작한 베이직 프로그래밍
필자는 금성의 FC-100으로 베이직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는데, 1983년 당시 국내에는 프로그래밍 자료가 전무하였기 때문에 학교를 마친 후 멀리 떨어진 세운상가에 있는 컴퓨터 서점에 가서 PIO와 같은 일본 잡지를 사다 보고는 하였다. 세운상가에서 안 좋은 물건을 팔며 호객행위를 하는 무서운 아저씨들을 피해, 서점으로 막 뛰어들어가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필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방학 때는 종로에 있었던 컴퓨터 대리점에서 살다시피 하며 또래의 동지들과 정보를 공유하고는 했는데, 그러던 1987년에 민컴이라는 회사에서 발간되던 월간 컴퓨터학습에서 사고(社告)를 통해 전국에서 '컴퓨터 좀 한다' 하는 중·고·대학생, 일반인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회사의 심사를 거쳐 20~30여명의 사람들로 'PC CLUB'이라는 아주 평이한 명칭의 모임이 결성했는데, 아마도 최초의 공식적인 PC 커뮤니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후 대학생과 일반인의 모임은 곧 흐지부지 되었고 20여명의 중고등학생들은 활발하게 활동을 하였다. PC CLUB은 X와 Apple II로 나뉘어져 활동을 하였는데, 필자만 유일하게 양쪽 모두에서 활동을 하였다. 지금도 갖고 있는 기술의 양다리 근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컴퓨터학습 PC CLUB 시절의 기억
1983년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국내 8비트 PC의 황금기는 X, AppleII+, SPC-1000의 트리오가 장악하였다. SPC-1000은 NEC의 PC를 모델로 하기는 했지만 토종 PC라고 할 수 있는데, X나 Apple II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사용자가 적은 편이었다. 당시 X 기종은 대우 IQ 1000·2000이 유명하였고, 삼보 트라이젬은 Apple II 호환 기종으로 유명하였다. 한때 세상을 풍미했던, 추억의 이름들이다.

PC CLUB 모임은 컴퓨터에 미친 20여명의 중고등학생들에게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마포에 있었던 컴퓨터학습 편집실에서 LOGIN, X 매가진, BYTE 등의 외국 컴퓨터 잡지를 맘껏 볼 수 있었고,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잡지에 활발한 기고를 하였으며 'X I·II 파워업 테크닉', '애플IIe 테크노트'와 같은 서적을 공동 집필하기도 하였다. 다들 BIOS 레벨에서 어셈블리 언어로 PC를 맘껏 다루었으며 저속 모뎀을 통한 PC 통신도 누구보다도 먼저 접했고 정말 모든것에 있어서 얼리어댑터였지만, 그런우리에게는 넘을 수 없는 산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입시였다. 우리는 매일매일 컴퓨터에 미쳐서 살았는데, 정말로 모든 에너지를 프로그래밍에 쏟았고 그것은 바로 물리적으로 학교 공부를 할 시간이 없음을 의미했다. 조숙한 멤버들은 학교 공부의 무의미함에 대해 역설하고는 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조숙함은 어쩌면 낙오자가 되는 징후였다. 1980년대 당시 어린 시절 일찍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한다는 것은 불행의 씨앗이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통조림 같은 인간을 생산하는 학교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이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부모들의 입장에서 그것이 무엇인지 진정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컴퓨터 또는 입시 공부? 그리고 깊은 상실감
클럽 멤버들은 늦어도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어떤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필자를 포함한 몇몇 멤버들은 대외적인 수상 경력이 있고 잡지 기고 또는 프로그래밍 아르바이트 등으로 돈을 벌기도 하였지만, 지금과 달리 당시는 그것이 어떤 플러스 요인도 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을 받을 뿐이었다.

그래서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포기하고 입시에 전념하든가, 또는 대학을 포기하든가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해다. 당시는 학력고사를 보았고 전후기로 나누어 모집하던 시기로서, 전기 경쟁률이 5대 1에 육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클럽 멤버들은 정말로 두 부류로 나뉘게 되었다. 컴퓨터를 포기하고 입시에 전념한 멤버들은 거의 모두 서울대, 연고대 등의 좋은 대학에 진학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컴퓨터를 단념하고 입시에 몰두한 이들의 기분은 과연 어땠을까? 필자는 그것이 일종의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필자는 컴퓨터를 영혼을 가진 생명체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과거에 소유했던 X II, Apple IIe, SPC-1000A 컴퓨터들이 수호천사가 되어 지금까지 필자를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순진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PC에 대한 배신을 선뜻 선택할 수 없었다.

어쨌든 컴퓨터 대신 입시 공부를 선택한 멤버들과 컴퓨터와의 관계는 소원해졌고, 웬일인지 그것은 회복되지 않았다. 어쩌면 배신당한 컴퓨터가 다시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한 대학 신입생이라는 것이 꽤나 방탕한 시기이고, 그리고 절묘하게도 1990년 전후의 시기는 8비트 PC와 16비트 PC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는 시기였다. 그러한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해 8비트 PC 시절의 영재들은 대학으로 사라졌고, 이후에는 컴퓨터에 대한 열정을 회복하지 못하고 대부분 평범한 사용자로 남게 되었다.

낙오자가 된 영재들
그렇다면 사랑하는 컴퓨터를 한시도 포기할 수 없어, 차라리 대학을 포기한 멤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한 멤버들은 대부분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고 있었다. 또래의 누구보다도 일찍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발견했다는 자부심, 학교 공부는 자아실현에 의미가 없으며, 대학에서도 배울 것이 없다는 확신 등이 어우러져, 남들이 볼 때는 어떻든 그저 세운상가에서 PC를 조립하며 프로그래밍 아르바이트를 할지언정 무의미한 대학에는 진학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또는 진학하고자 해도 이미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성적이 부실한 멤버들도 많았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모든 것을 올인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학을 포기한 멤버들의 인생은 그다지 잘 풀리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사업을 한 후배도 있고, 탁월한 프로그래밍 실력을 인정받아 회사에 취업한 친구도 있고, 세운상가에서 매장을 운영한 이도 있지만 그들의 치기 어린 자신감은 이 사회에서는 애초부터 인정받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기분만으로 살아가기에, 이 사회는 너무나 많은 전제 조건을 요구하는데 그것에는 학력 및 경륜이 포함된다. 지금은 그래도 좀 나아졌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더욱 심했다.

당시 필자 또한 대학에 진학하지 않기로 결심을 하고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때까지 프로그래밍에 미쳐 살면서 많은 대외 활동을 하였다. 고3때 밤을 새며 ISAM 기반의 데이터베이스 처리 프로그램을 작성할 정도였다. 하지만 고3 1학기 때 갑자기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사회의 냉혹함을 적나라하게 느끼게 되었고, 그로 인해 뒤늦게 대학을 가기로 결정을 하게 된다. 그 후 고학을 하며 힘겨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이후에도 수많은 사연들이 있지만 여기에서 자세하게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필자의 컴퓨터에 대한 열망은 집안 사정으로 인해 오히려 필자를 꾸준히 한 길로 가게 만들어 주었다.

20여 년간의 PC 역사를 생각해 보면, 국내 8비트 PC 시절의 영재들이 몹시 아쉽다. 미국이나 일본을 보면, 8비트 PC 시절의 영재들이 현재 유명 IT 회사의 CTO나 수석 개발자로 일하면서 또한 활발히 대외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물론 그런 케이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필자가 아는 수많은 8비트 PC 시절의 영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필자보다 훨씬 뛰어났던 한 후배는 8비트 PC의 황금기에는 훌륭한 어셈블리 프로그래머였지만, 컴퓨터를 단념하고 서울대에진학하였고 이후 리포트를 쓰기 위해 16비트 PC의 사용자가 되었고 지금은 그저 평범한 회사원일 뿐이다.

그것을 개인의 선택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고 실제로 그런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닐 테지만, 입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컴퓨터를 포기하고 평범한 사용자로 전락한 영재들, 컴퓨터를 일순간도 포기할 수 없어 대학을 포기했지만 학력 및 나이 차별로 인해 낙오자가 되어 지금은 잠수해버린 영재들이 상당수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나라 IT 산업의 위상 중 유독 소프트웨어 산업이 저급한 수준에 머무르는 이유에는 분명히 이러한 과거의 요인이 감추어져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꿈 꿀 수 있는 사람을 위한 사회는 언제쯤?
20여 년에 걸친 긴 얘기를 짧게 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이것이 제한적인 경험을 가진 한 개인의 사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얘기를 하며 공유했던, 필자가 갖고 있는이러한 안타까운 기억을 한번쯤은 공개적으로 실토해보고 싶었다. 그로부터 사회가 많이 변했고 지금은 대학 진학에 특기자 전형 등의 혜택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단지 대학 진학 또는 취업 여부를 떠나, 자신의 적성을 일찍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을 지원하는 사회적 시스템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진정한 적성을 찾아서 발견해내고, 그 목표를 위해 한 단계씩 정진해나가는 젊은이로서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사회는 언제쯤 올 것인가? 지금과 같은 사회적 풍토에서는 여전히 그것이 요원할 뿐이다. @

PS: 지금은 연락이 두절된 당시 PC CLUB 멤버들의 근황이 많이 궁금하다. 혹시 이 글을 본다면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트랙백 주소 : http://www.zdnet.co.kr/Reply/trackback.aspx?key=00000039129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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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4 15:18 2009/12/14 15:18
허접 드리프트로 AI 차량을 물리치고 down hill에서 1등 먹은 기념으로,

iphone출시와 더불어 앞으로 많이 사용하게 될 것 같은 youtube 사용 경험 차 올려 봅니다.

아 정말 허접한 드리프트인데도 동영상으로 올려 보니 괜찮네요(게임네에서 웹으로 리플레이를 올리는 기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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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4 11:54 2009/11/24 11:54
요즘 iphone 출시로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서,

좋은 글 몇가지 링크 드립니다.


안드로이드 폰은 정말로 아이폰의 대항마일까? :
http://mocona.tistory.com/133



iPhone 판매처 현재 예약 상황 및 사은품 정리(수정) :
http://kmug.co.kr/board/zboard.php?id=news&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7887



한국 아이폰 판매가격 정리 :
http://kmug.co.kr/board/zboard.php?id=news&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7875



아이폰 요금 자동 계산 사이트 :
http://kmug.co.kr/board/zboard.php?id=news&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7875




비지니스 관련

안드로이드 대 아이폰 1: 플랫폼
http://kmug.co.kr/board/zboard.php?id=column&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873



안드로이드 대 아이폰 2: 사업모델
http://kmug.co.kr/board/zboard.php?id=column&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874



안드로이드 대 아이폰 3: 코어 시스템과 번들 소프트웨어
http://kmug.co.kr/board/zboard.php?id=column&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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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4 11:37 2009/11/24 11:37
어떤분의 결론(합리적인 생각이고 내 생각과도 같다)

역시 구글의 최대 수익은 광고이고, 그 수익을 내기 위한 최고의 플랫폼은 웹서비스(gmail등등등) 이며,

그런이유로 어떤 폰에서라도 gmail과 google map등이 잘 돌아가면 그 뿐....




1. 안드로이드 폰은 아이폰의 대항마가 될 수 없다, 아니, 될 마음이 없다.
 
 2.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나올 '구글 폰'은 아이폰의 대항마가 될 수 있다, 아니 구글은 그렇게 되도록 만들것이다.

3. 그렇다고 해서,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기존 핸드폰 업체들에 대한 안드로이드 개발 지원과  적용을 소홀히 하지는 않을 것이다.

4. 어찌되었던 구글로서는 손해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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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2 16:10 2009/11/22 16:10
구글에서는 소스만 발표 되었지만, 유저들이 컴파일해서 virtualbox / vmware로 수행가능한 이미지로 배포 하고 있네요

로그인 안되서 고생했는데 방법은 virtualbox의 랜카드를 Intel Pro/1000 MT Desktop (82540EM) 로 변경 하면 됩니다.

과연 구글은 안드로이드와 크롬OS를 어떻게 발전시켜 갈지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

다운로드 및 정보 :

http://geeklad.com/download-the-google-chrome-os-virtual-mac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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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2 09:37 2009/11/22 09:37

능력이 된다면 도전해 보세요...ㅠ.ㅠ






http://jobs.apple.com/index.ajs?BID=1&method=mExternal.showJob&RID=43345&CurrentPage=2



Job description

Requisition Number 4693392
Job title Game/Media Software Engineer
Location Santa Clara Valley
Country United States
City Cupertino
State/Province California
Job type Full Time
Job description The interactive media group is looking for a skilled software engineer who wants to work as part of a small highly motivated team to work on interactive multimedia experiences on the iPhone and iPod Touch. The position on the team is to help design and implement interactive multimedia experiences on the iPhone and iPod Touch. The position also requires a creative thinker who can contribute and comment on the design process as well as being flexible enough to aid in all aspects of production such as asset management and able to work to a deadline.

Looking for skilled engineer with the following background.

-strong C / C++ / Objective-C / iPhone background preferred
-3-4 years of video game development experience, shipped at least one AAA title
-passionate gamer
-skills in audio systems, graphics pipeline, and network programming a plus
-ability to work in small dynamic team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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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6 13:46 2009/11/16 13:46

요즈음의 나의 상황....

스티브 잡스라면 어떻게 했을까?

원문링크 : http://kmug.co.kr/board/zboard.php?id=column&no=1867






The decade of Steve

How Apple's imperious, brilliant CEO transformed American business.

By Adam Lashinsky, editor at large
Last Updated: November 5, 2009: 8:13 AM ET

(Fortune magazine) -- 매력적인 기업인 이야기라면 이정도가 되어야 하잖을까. 젊은 창립자가 1980년대 자기 회사에서 쫓겨나 1990년대에 되돌아오고, 그 다음 10년간 두 번의 죽을 고비와, 한 번의 증권 스캔들, 항상 끼어드는 경쟁제품들을 이겨냈다. 그리고 가끔은 불쾌한 태도가 네 가지 분야 산업의 중심 태도가 되었고, 매번 억만장자가 되기도 하였으며, 실리콘밸리에서 제일 가치 높은 회사의 CEO가 되기도 하였다.

너무나 현실감이 떨어지지 않는가? 아마 그러하실 것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진짜 이력이 그러하다. 그가 손대는 것마다 드리우는 충격도 거대하다.

지난 10년간은 오로지 잡스의 10년이었다. 이 간단한 문장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거의 1년간, 그의 업적에 대한 리뷰가 나오기만 해도, 그것이 고별사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돌아왔다.

"one more thing"의 신호는 이제 그의 것이 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전반기 6개월의 병가기간 동안 그는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제 그는 다시금 34,000명의 강력한 군대를 호령하고 있다. 강력하고 창조적이며, 비밀스럽고 겁나며 오만한 조직이다. 물론 이윤도 내고 있다. 잡스와 그의 동무, 스티브 워즈니악이 1976년, 애플을 세운 이후로 언제나 그래왔다.

그는 젊었을 적부터, 자신에게 최고를 붙여왔다. 그는 이제 54세이다. 그가 이룬 것을 목록만 만들어 보아도, 그가 어째서 올 10년간의 최고 CEO 자리에 올랐는지 알기 충분하다. 지난 10년간만해도 그는 시장 세 군대를 급격히, 그리고 매력적으로 바꾸어왔다. 음악과 영화, 그리고 휴대폰이다. 그의 오리지날 산업인 컴퓨팅도 자라나기만 하였다.

한 산업 되만들기를 하나만 하더라도, 그 사람의 업적이라 정의내릴 수 있다. 잡스는 4건이다. 들어본 바 없다. 잠시 생각해 보자. 헨리 드는 자동차 산업의 진로를 바꿔버렸다. 팬암(PanAm)의 주안 트립프(Juan Trippe)은 국제 항공을 만들어냈다. 콘라드 힐튼(Conrad Hilton)은 미국 호텔을 세계화시켜놓았다. 위 사례를 보면, 이 세 명의 거장들은 이전까지 아무도 지배하지 못하였던 시장 하나를 재정의 내렸다. 잡스는 이미 존재하던 혼란스런 상황의 시장에 집중하여, 그 산업을 뒤바꿔놓았다.

그는 전세계적인 지명도를 지닌, 흔치않은 사업가이며, U2의 보노(Bono)와 친구이기도 하다. (그의 변덕과 편애는 워낙 유명해서, 심슨스에서 패러디하기도 하였다.) 애플의 연간 실적 보고서나 전문지를 절대로 보지 않는 소비자들은 잡스의 디자인 취향과 우아한 소매점, 제품 외로 벗어난 광고접근을 두고 말하기를 즐긴다.

그가 쇼맨쉽을 가졌으며, 타고난 사업가이자, 그 유명한 현실왜곡의 장을 만들어낸 마술사, 완벽주의의 폭군이라는 지적도 종종 나온다. 물론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잡스 전설을 묘사할 때 들어가는 말들이다.

온갖 기사 작성자와 디자이너, 음악가들과 어울려다니는 잡스라서, 그가 반기업적인 매력을 지녔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실수하지 않기 바란다. 잡스는 정말 사업가이다. 소비자 연구에 관심을 갖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소비자들이 사게 될 제품만 만든다.

그는 선지자가 맞다. 하지만 그 배경은 든든한 현실이기도 하다. 애플의 여러가지 경영 방식과 시장 접근을 자세히 조사해보라. 친구인 오라클의 CEO, 엘리슨(Larry Ellison)에 따르면 잡스는 돈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가 애플에 열심인 것이야 본능적이다. 이해할만하다. 애플은 그의 첫사랑이다. 쫓겨났음에도 다시 찾아갈 정도다. 덕분에 그는 쿨함과 세상을 바꾸는 힘, 모두에게 있어서 중개자가 될 수 있었다.

재무 성과를 보면 애플과 잡스에게 탄성밖에 안나온다. 2000년 당시 애플 시가는 50억 달러 정도였다. 업계를 뒤흔들 "디지탈 라이프스타일" 전략이 나오기 직전이다. 당시 이 전략을 이해한 비판가들은 거의 없었다. 애플의 현재 시가는 1,700억 달러이다. 구글보다 약간 더 가치가 높다.

당시는 애플의 개인용 컴퓨터 시장점유율도 당시는 감소추세였으며 현금 누출도 심해서, 부도 가능성도 거론되었다. 그랬던 애플의 현재 현금보유고는 340억 달러이며, 라이벌인 델을 추월하였다. 오늘날 미국내 매킨토시의 PC 시장점유율은 9%로 올라섰지만, 이제는 시장점유율이 점차 중요해지지 않고 있다.

9개 국가에 있는 275개 소매점에, 미국내 MP3 플레이어 시장점유율 73%, 휴대폰이 나올 때 특히 드러난, 혁신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리더쉽. 이 모든 것이 애플과 그 CEO 덕분이다. 이제 누구도 애플을 패배자라 말하지 않는다.

2006년 디즈니는 잡스가 영양분을 공급하고 통제해온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를 인수한다. 75억 달러에 달하는 인수로, 잡스는 디즈니의 이사 자리를 얻게 되고, 디즈니 내 최대 주주가 되기도 한다. 애플과 디즈니 시가로 따져볼 때 그의 총재산은 50억 달러 정도이다. 스타급 중역들은 잡스 외에도 많지만, 잡스와 비교할 만한 사람은 없다.

잡스가 애플로 돌아왔을 때, 그가 해결해야 할 난관은 대단히 많았다. 골리앗과 같은 역할은 물론, 다윗과 같은 영악함도 해야했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 일으킨 스마트폰과 같은 곳에서의 경쟁은 어떨까? 개인용 컴퓨터는 상대적 중요성이 이제 떨어져가고 있는 와중에 말이다. 그의 계승자는 어떨까? 그럴 만한 조직을 그가 꾸려냈을까? 최근 10년처럼, 향후 10년도 그가 지배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을까?

스티브의 "10년"은 실질적으로 1997년에 시작하였다. 회사에서 쫓겨난지 13년만에 애플로 되돌아왔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소박한, 자그마한 투자가 있었고, 애플 제품라인은 거의 4 종류의 컴퓨터로 줄어들었다. 그 다음 해부터 스티브의 체제가 시작되었다. 잡스는 새로운 경영팀 고용을 완수하였고, 이 중 상당수는 전 회사인 넥스트에서 데려왔다. 이들은 잡스가 거의 10년간 데리고 있었던 핵심인사들이었다.

잡스의 복귀 이후에 나온 첫 번째 매킨토시가 아이맥이었다. 올인원 컴퓨터와 모니터는 애플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었다. 급격한 가격 인하와 함께 이뤄진 비싼 아이맥의 성공으로, 잡스는 현금보유를 쌓을 수 있었다. 애플의 대차대조표를 우선 고친 다음, 잡스는 대형 투자를 준비하였다. 그런 투자가 있다면 정말 통찰력 있는 움직임이랄 수 있겠다.

잡스는 제일 상황이 안좋았을 때의 애플을 안정적으로, 아예 성층권으로 훌쩍 올려놓을 기반을 마련하였다. 2000년, 애플은 9월 분기발표 때의 재무목표를 채우지 못하였다. 그에 따라 주가가 계속 하락을 거듭하여 오늘날 가격으로 7달러 수준까지 떨어졌었다. 하지만 이 때의 잡스는 애플의 원기회복의 핵심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2001년, 세계시장이 침체에 들어가자, 애플은 1월, 아이튠스 뮤직 소프트웨어를, 3월에는 맥오에스텐 운영체제를, 5월에는 첫 번째 소매점을, 11월에는 첫 아이포드(5GB 용량으로서 천 곡 정도를 담을 수 있었다)를 선보였다.

이런 중요한 이벤트에 대해, 시장이 재빠르게 응답하지는 않았다. 아이튠스는 그저 음악을 재생시키는 소프트웨어로서 맥에 들어가 있고, 아직 음악을 파는 온라인스토어는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새 운영체제 또한 인상적이기는 하되, 틈새시장용 제품이었고, 아이포드는 기존 MP3 플레이어 시장에 진입한 호화로운 플레이어였을 따름이다.

애플 주가가 허덕이면서, 애플에 대한 인수 루머도 때때로 흘러나왔다. 전혀 보도가 되지 않은 것도 있다. 새로이 결성된 매각 그룹 Silver Lake Partners에게 애플을 넘길 것을, 잡스는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었다. 애플 매각이라면 큰 뉴스거리가 될만했으나, 그 협상에 정통한 사람들에 따르면, 결국 이 안건을 철회시킨 장본인도 잡스였다.

그런데 애플을 인수하겠다는 심각한 제안이 두 번째로 또 나왔다. 1997년, 잡스의 친구인 엘리슨(후에 애플 이사가 된다)이 잡스의 경영을 지속시킨다는 가정 하에 애플을 인수하기 위한 자금형성을 시작한 것이다. 최근 엘리슨의 인터뷰에 따르면 잡스는 그러한 가정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기가 돈벌려고 애플에 복귀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었다. 엘리슨의 말이다. "잡스가 내게 말했어요. 도덕적인 명분이 많이 있어야 않겠냐. 그래야 결정을 보다 쉽고 우아하게 내릴 수 있다면서 말이죠."

잡스의 복귀에 관심을 기울인 이들을 위해, 잡스는 애플의 궤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2002년 초, 타임지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이다. "다른 제품군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경쟁하느니, 차라리 소니와 경쟁하겠습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운영체제를 모두 갖고 있는 회사는 우리 애플 뿐입니다. 사용감에 대한 완전한 책임을 질 수 있죠. 다른 회사들은 못하는 일입니다."

잡스는 대중이 결국 애플로 돌아오리라 확신했었다. 다만 예술가와 학생들로 구성된 충실한 매킨토시 사용자들만이 아니어야 했다. 오늘날 애플에 너무나 긴밀히 통합되어 있는 애플이 직접 운영하는 스토어는 한 때 현금지출만 일으킨다는 비판도 받았었다. 전임 애플 중역이자 Intuit의 사장이고 애플 이사진인 빌 캠벨(Bill Campbell)의 말이다.

"불안해 하는 이사진들을 갖고 이뤄낸 것이죠. 소비자들이 원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았어요." 더 놀라운 내용이 있다. 당시 애플스토어를 뭘로 채울지 고민한 흔적이다. 잡스는 어떻게 채울지를 알았다.

잡스는 애플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냈다. 애플과 함께 온오프로 여러 해동안 일한 Chiat/Day의 전임 크리에이티브 부장인 켄 시걸(Ken Segall)의 말이다. "설마 CEO까지 관여하랴 싶은 일 세세한 부분에 모두 그가 관여했습니다. 아이콘처럼 된 'Think Different' 캠페인도 그가 주문했었죠." 이 때는 애플의 신제품이 소개도 되기 전이었다. 광고팀에도 소개를 안시켜주었고 말이다. 시걸의 말이다. "가령 잡스는 이런 식이었습니다. '네 번째 단락의 세 번째 단어가 맞지 않아요.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싶으실 것입니다.'"

큰 그림은 물론 작은 그림도 파악하는 경영법이야말로 잡스의 특징이다. 애플에 복귀한 직후, 잡스는 컴퓨터 업계에서 애플을 차별화시켜줄 것은 찬란한 디자인임을 깨달았다. 델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인텔과 같은 성공한 기업들의 디자인은 시시했다. 제품-디자인 컨설턴트 기업인 Ideo의 CEO인 팀 브라운(Tim Brown)의 말이다. 그의 새로운 책 "Change by Design"에서 그가 한 말이다. "'제게 차세대 아이포드를 주세요.'라 말한 클라이언트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지만 작은 소리로 '제게 차세대 스티브 잡스를 주세요.'라 말하는 디자이너들도 거의 부지기수이다."

잡스는 또한 타이밍의 귀재이기도 하다. 애플이 아이튠스로 진입하기 전, 음반업계는 고유의 디지탈-음반 판매를 계속 실패했었다. 반면 애플은 음악 구매의 장으로서, 아이튠스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잡스는 아이튠스를 맥에서만 작동하도록 하는 것으로, 음반사들과 협상을 맺었다. 2002년 당시 맥의 개인용 컴퓨터 시장점유율은 낮은 한 자리 대였다. 아이튠스가 윈도용으로 나와서 거의 모든 PC시장으로 확대될 때까지, 맥의 낮은 시장점유율은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파괴적인 패러다임 변동보다 실험을 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Appetite for Self-Destruction"이라는 새 책이 있다. Rolling Stone의 필자인 노퍼(Steve Knopper)가 쓴 책으로서, 음반산업의 악랄함에 대한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Universal Music의 수장인 더그 모리스(Doug Morris)가 한 말이 있다. "맥으로, 그것도 1년만에 애플이 어떻게 음반사업을 망쳐놓을 수 있는지 난 이해 못했소." 노퍼의 글이다. "이걸 왜 하면 안되었을까? 당시 스티브 잡스가 다가왔을 때, 잡스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상황을 알아차릴 정도로 그는 영민했을 따름이다. 잡스는 터프하게 행동했지만, 최근 아티스트들과 계약협상을 하는 거대음반사 변호사보다 더 터프하지는 않다."

잡스의 주요 사업 수단은 메시지의 완벽화이다. 그는 발표하게 될 애플에 관한 내용을 한 줄 한 줄, 계속 리허설한다. 잡스 외에 주어진 주제에 대해 발표할 수 있는 중역은 소수일 뿐이다.

잡스식 접근방법의 핵심은 그와 애플이 무엇을 말하느냐, 그리고 무엇을 말하지 않느냐에 대한 깊은 숙고이다. 하버드대학교 교수인 여피(David Yoffie)는 2007년, 아이폰을 발표한 뒤, 판매에 이르는 기간동안 전혀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을 흥분하게 만들어서, 무료 광고효과를 4억 달러 정도 받았다고 추측했다.

잡스 자신이 과도한 노출을 신중하게 피한다. 제품을 홍보할 때에만 말하기를 선호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는 2004년 당시의 암 수술조차 밝히지 않았다. 수술 후, 직원 전체 메일이라는 형식만으로 밝혔을 뿐이다. 전략적인 알림이었던 셈이다. 마찬가지로 최근의 병가도 직원 서한 형식으로 세상에 알렸다. 잡스 자신이나, 애플 사람 모두 추가적인 코멘트를 하지는 않았다.

애플 내 언론홍보팀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말을 할 수 없다. 이 팀은 잡스에게 직속으로 보고를 하는 팀이다. 애플은 이 기사를 위해 잡스가 인터뷰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거절을 하였지만 다른 이들이 잡스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은 허용하였다. 물론 다른 것에 대해서는 거절하였다.

이러한 비밀주의 때문에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들이 골머리를 썩힌다. 이들은 잡스처럼 중요한 CEO의 건강문제라면, 더 확실히 밝혀야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잡스는 애플의 전임 CFO와 법무실장을 스캔들에 휩싸이게 만든, 스톡옵션 백데이팅에 대해서도 침묵하였다.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애플이 옵션 행사일을 조정해서, 보다 더 이윤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사실을 잡스도 알고 있었다고 되어 있다. 잡스는 백데이팅에 대해 사과를 하였으며, 이에 대해 "전혀 애플다운 일이 아닙니다(completely out of character for Apple)"라 하였다.

잡스는 재무와 메시지, 협상, 디자인 그 이상을 관리한다. 한 때 컴퓨터 업계의 무서운 아이가 이제는 유례없이 강력한 회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최근의 병가를 보면, 스티브 잡스도 인간일 따름이다. 그가 혹시 죽게 된다면 애플은 잡스 없이 어느 정도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Apple's future.

스티브 잡스가 공공석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지난 9월, 잡스는 애플의 한 중역 이름을 대며, 그에게 특별히 감사를 표하였다. 그의 이름은 애플의 수석경영자인 팀 쿡이었다.

새로운 아이포드를 소개하는 이벤트에서 잡스는 우선 언론 종사자와 분석가들, 애플 개발자들에게 자신이 "자동차 사고로 죽은 20대의 간 기증자가 기증한" 간을 갖고있다 발표하였다. 그러고나서 그는 쿡에게 감사를 표하고, 자신이 없을 때에도 애플을 유능하게 관리한 다른 경영진들에게도 감사를 표하였다. 쿡도 맨 앞줄에서, 팔까지 높게 올리며 열렬한 환영을 표하였다.

잡스가 복귀하자, 쿡이나 다른 누군가 잡스의 자리를 채울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은 일단 사그라들었다. 한 전임 애플 중역의 말이다. "애플에서 위계질서는, 스티브가 누구를 부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잡스께서 말씀하시기를'이 엄청난 가치를 갖죠."

계승에 관한 얘기를 싫어하기로 유명한 CEO인 래리 엘리슨은 자기 친구이기도 한 잡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를 교체할 수가 없어요. 그 자체가 엄청난 브랜드입니다. 엄청난 제품이기도 하죠. 그가 떠날 때마다 건강하게 은퇴하기를 바란답니다. 지중해에서 요트라도 몰기 바라죠. 물론 애플이 그를 엄청나게 그리워하게 되겠지. 애플은 소비자용 제품 회사에요. 제품 사이클이 무척 빠르단 말입니다."

잡스가 경영진들을 자기 없이도 잘 하도록 계속 가르쳐왔다는 신호도 있다. 애플 경영팀과 접촉하는 이의 말이다. "스티브처럼 생각하는 법을 계속, 완전히 훈련받아왔어요. 이 때문에 6개월이 그리 부드럽게 흘러갔겠죠. 누구나 비전제시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스티브라면 이렇게 했겠지.'"

사실 잡스의 영향력은 애플을 넘어선다. 레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은 최근 New Yorker지 에 잡스가 자기들의 영웅이라 말했다.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아마존에서 킨들 2를 선보였을 때, 잡스가 이를 질투했음도 분명하다. 벤처자본가이자 넷스케이프를 공동창립했던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essen)은 모험자본가들에게 잡스가 했던 말을 가끔 일깨운다고 말했다. "첫 번째 제품을 선보일 때 꼭 생각하세요. '스티브 잡스라면 어떻게 했을까?'"

향후 10년동안도 잡스는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다양하게 던져볼 것이다. 시가 1,500억 달러 어치가 넘는 회사를 만들고, 영화와 통신사, 음악, 컴퓨팅(그리고 세상에 소매점과 디자인의 중요성을 알렸다)을 전환시켜낸 자신이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비밀주의와 쇼에 대한 취향, 그리고 검증된 그의 영특함을 볼 때, 준비가 되었을 때에만 우리에게 알려줄 것이다. 그 정도로 생각하는 편이 낫겠다.

Reporter associate Doris Burke
First Published: November 5, 2009: 8:01 AM 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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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2 11:02 2009/11/12 11:02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도종환)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

  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도  치열하였으나 그 뒤

  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

  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 그때는 지구 북쪽 끝의 얼음이 녹아 가까운

  바닷가 마을까지 얼음조각을 흘려보내는  날이 오리라 한다 그때도 숲은

  내 저문 육신과 그림자를 내치지 않을 것을  믿는다 지난 봄과 여름 내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험했는지 꽃과 나무들이 알고 있으므로

  대지가 고요한 손을 들어 증거해줄 것이다

 

     아직도 내게는 몇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은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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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3 01:28 2009/11/03 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