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pple's imperious, brilliant CEO transformed American business.
By Adam Lashinsky, editor at large
Last Updated: November 5, 2009: 8:13 AM ET
(Fortune
magazine) -- 매력적인 기업인 이야기라면 이정도가 되어야 하잖을까. 젊은 창립자가 1980년대 자기 회사에서 쫓겨나
1990년대에 되돌아오고, 그 다음 10년간 두 번의 죽을 고비와, 한 번의 증권 스캔들, 항상 끼어드는 경쟁제품들을 이겨냈다.
그리고 가끔은 불쾌한 태도가 네 가지 분야 산업의 중심 태도가 되었고, 매번 억만장자가 되기도 하였으며, 실리콘밸리에서 제일
가치 높은 회사의 CEO가 되기도 하였다.
너무나 현실감이 떨어지지 않는가? 아마 그러하실 것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진짜 이력이 그러하다. 그가 손대는 것마다 드리우는 충격도 거대하다.
지난 10년간은 오로지 잡스의 10년이었다. 이 간단한 문장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거의 1년간, 그의 업적에 대한 리뷰가 나오기만 해도, 그것이 고별사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돌아왔다.
"one more thing"의 신호는 이제 그의 것이 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전반기 6개월의 병가기간 동안 그는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제 그는 다시금 34,000명의 강력한 군대를 호령하고 있다. 강력하고 창조적이며, 비밀스럽고 겁나며 오만한
조직이다. 물론 이윤도 내고 있다. 잡스와 그의 동무, 스티브 워즈니악이 1976년, 애플을 세운 이후로 언제나 그래왔다.
그는 젊었을 적부터, 자신에게 최고를 붙여왔다. 그는 이제 54세이다. 그가 이룬 것을 목록만 만들어 보아도, 그가 어째서 올
10년간의 최고 CEO 자리에 올랐는지 알기 충분하다. 지난 10년간만해도 그는 시장 세 군대를 급격히, 그리고 매력적으로
바꾸어왔다. 음악과 영화, 그리고 휴대폰이다. 그의 오리지날 산업인 컴퓨팅도 자라나기만 하였다.
한 산업 되만들기를 하나만 하더라도, 그 사람의 업적이라 정의내릴 수 있다. 잡스는 4건이다. 들어본 바 없다. 잠시 생각해
보자. 헨리 드는 자동차 산업의 진로를 바꿔버렸다. 팬암(PanAm)의 주안 트립프(Juan Trippe)은 국제 항공을
만들어냈다. 콘라드 힐튼(Conrad Hilton)은 미국 호텔을 세계화시켜놓았다. 위 사례를 보면, 이 세 명의 거장들은
이전까지 아무도 지배하지 못하였던 시장 하나를 재정의 내렸다. 잡스는 이미 존재하던 혼란스런 상황의 시장에 집중하여, 그 산업을
뒤바꿔놓았다.
그는 전세계적인 지명도를 지닌, 흔치않은 사업가이며, U2의 보노(Bono)와 친구이기도 하다. (그의 변덕과 편애는 워낙
유명해서, 심슨스에서 패러디하기도 하였다.) 애플의 연간 실적 보고서나 전문지를 절대로 보지 않는 소비자들은 잡스의 디자인
취향과 우아한 소매점, 제품 외로 벗어난 광고접근을 두고 말하기를 즐긴다.
그가 쇼맨쉽을 가졌으며, 타고난 사업가이자, 그 유명한 현실왜곡의 장을 만들어낸 마술사, 완벽주의의 폭군이라는 지적도 종종 나온다. 물론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잡스 전설을 묘사할 때 들어가는 말들이다.
온갖 기사 작성자와 디자이너, 음악가들과 어울려다니는 잡스라서, 그가 반기업적인 매력을 지녔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실수하지 않기
바란다. 잡스는 정말 사업가이다. 소비자 연구에 관심을 갖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소비자들이 사게 될 제품만 만든다.
그는 선지자가 맞다. 하지만 그 배경은 든든한 현실이기도 하다. 애플의 여러가지 경영 방식과 시장 접근을 자세히 조사해보라.
친구인 오라클의 CEO, 엘리슨(Larry Ellison)에 따르면 잡스는 돈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가 애플에 열심인
것이야 본능적이다. 이해할만하다. 애플은 그의 첫사랑이다. 쫓겨났음에도 다시 찾아갈 정도다. 덕분에 그는 쿨함과 세상을 바꾸는
힘, 모두에게 있어서 중개자가 될 수 있었다.
재무 성과를 보면 애플과 잡스에게 탄성밖에 안나온다. 2000년 당시 애플 시가는 50억 달러 정도였다. 업계를 뒤흔들 "디지탈
라이프스타일" 전략이 나오기 직전이다. 당시 이 전략을 이해한 비판가들은 거의 없었다. 애플의 현재 시가는 1,700억
달러이다. 구글보다 약간 더 가치가 높다.
당시는 애플의 개인용 컴퓨터 시장점유율도 당시는 감소추세였으며 현금 누출도 심해서, 부도 가능성도 거론되었다. 그랬던 애플의
현재 현금보유고는 340억 달러이며, 라이벌인 델을 추월하였다. 오늘날 미국내 매킨토시의 PC 시장점유율은 9%로 올라섰지만,
이제는 시장점유율이 점차 중요해지지 않고 있다.
9개 국가에 있는 275개 소매점에, 미국내 MP3 플레이어 시장점유율 73%, 휴대폰이 나올 때 특히 드러난, 혁신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리더쉽. 이 모든 것이 애플과 그 CEO 덕분이다. 이제 누구도 애플을 패배자라 말하지 않는다.
2006년 디즈니는 잡스가 영양분을 공급하고 통제해온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를 인수한다. 75억 달러에 달하는 인수로,
잡스는 디즈니의 이사 자리를 얻게 되고, 디즈니 내 최대 주주가 되기도 한다. 애플과 디즈니 시가로 따져볼 때 그의 총재산은
50억 달러 정도이다. 스타급 중역들은 잡스 외에도 많지만, 잡스와 비교할 만한 사람은 없다.
잡스가 애플로 돌아왔을 때, 그가 해결해야 할 난관은 대단히 많았다. 골리앗과 같은 역할은 물론, 다윗과 같은 영악함도 해야했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 일으킨 스마트폰과 같은 곳에서의 경쟁은 어떨까? 개인용 컴퓨터는 상대적 중요성이 이제 떨어져가고 있는
와중에 말이다. 그의 계승자는 어떨까? 그럴 만한 조직을 그가 꾸려냈을까? 최근 10년처럼, 향후 10년도 그가 지배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을까?
스티브의 "10년"은 실질적으로 1997년에 시작하였다. 회사에서 쫓겨난지 13년만에 애플로 되돌아왔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소박한, 자그마한 투자가 있었고, 애플 제품라인은 거의 4 종류의 컴퓨터로 줄어들었다. 그 다음 해부터 스티브의 체제가
시작되었다. 잡스는 새로운 경영팀 고용을 완수하였고, 이 중 상당수는 전 회사인 넥스트에서 데려왔다. 이들은 잡스가 거의
10년간 데리고 있었던 핵심인사들이었다.
잡스의 복귀 이후에 나온 첫 번째 매킨토시가 아이맥이었다. 올인원 컴퓨터와 모니터는 애플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었다. 급격한 가격
인하와 함께 이뤄진 비싼 아이맥의 성공으로, 잡스는 현금보유를 쌓을 수 있었다. 애플의 대차대조표를 우선 고친 다음, 잡스는
대형 투자를 준비하였다. 그런 투자가 있다면 정말 통찰력 있는 움직임이랄 수 있겠다.
잡스는 제일 상황이 안좋았을 때의 애플을 안정적으로, 아예 성층권으로 훌쩍 올려놓을 기반을 마련하였다. 2000년, 애플은 9월
분기발표 때의 재무목표를 채우지 못하였다. 그에 따라 주가가 계속 하락을 거듭하여 오늘날 가격으로 7달러 수준까지 떨어졌었다.
하지만 이 때의 잡스는 애플의 원기회복의 핵심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2001년, 세계시장이 침체에 들어가자, 애플은 1월, 아이튠스 뮤직 소프트웨어를, 3월에는 맥오에스텐 운영체제를, 5월에는 첫 번째 소매점을, 11월에는 첫 아이포드(5GB 용량으로서 천 곡 정도를 담을 수 있었다)를 선보였다.
이런 중요한 이벤트에 대해, 시장이 재빠르게 응답하지는 않았다. 아이튠스는 그저 음악을 재생시키는 소프트웨어로서 맥에 들어가
있고, 아직 음악을 파는 온라인스토어는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새 운영체제 또한 인상적이기는 하되, 틈새시장용 제품이었고,
아이포드는 기존 MP3 플레이어 시장에 진입한 호화로운 플레이어였을 따름이다.
애플 주가가 허덕이면서, 애플에 대한 인수 루머도 때때로 흘러나왔다. 전혀 보도가 되지 않은 것도 있다. 새로이 결성된 매각
그룹 Silver Lake Partners에게 애플을 넘길 것을, 잡스는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었다. 애플 매각이라면 큰
뉴스거리가 될만했으나, 그 협상에 정통한 사람들에 따르면, 결국 이 안건을 철회시킨 장본인도 잡스였다.
그런데 애플을 인수하겠다는 심각한 제안이 두 번째로 또 나왔다. 1997년, 잡스의 친구인 엘리슨(후에 애플 이사가 된다)이
잡스의 경영을 지속시킨다는 가정 하에 애플을 인수하기 위한 자금형성을 시작한 것이다. 최근 엘리슨의 인터뷰에 따르면 잡스는
그러한 가정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기가 돈벌려고 애플에 복귀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었다. 엘리슨의 말이다. "잡스가 내게
말했어요. 도덕적인 명분이 많이 있어야 않겠냐. 그래야 결정을 보다 쉽고 우아하게 내릴 수 있다면서 말이죠."
잡스의 복귀에 관심을 기울인 이들을 위해, 잡스는 애플의 궤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2002년 초, 타임지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이다. "다른 제품군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경쟁하느니, 차라리 소니와 경쟁하겠습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운영체제를 모두
갖고 있는 회사는 우리 애플 뿐입니다. 사용감에 대한 완전한 책임을 질 수 있죠. 다른 회사들은 못하는 일입니다."
잡스는 대중이 결국 애플로 돌아오리라 확신했었다. 다만 예술가와 학생들로 구성된 충실한 매킨토시 사용자들만이 아니어야 했다.
오늘날 애플에 너무나 긴밀히 통합되어 있는 애플이 직접 운영하는 스토어는 한 때 현금지출만 일으킨다는 비판도 받았었다. 전임
애플 중역이자 Intuit의 사장이고 애플 이사진인 빌 캠벨(Bill Campbell)의 말이다.
"불안해 하는 이사진들을 갖고 이뤄낸 것이죠. 소비자들이 원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았어요." 더 놀라운 내용이 있다. 당시 애플스토어를 뭘로 채울지 고민한 흔적이다. 잡스는 어떻게 채울지를 알았다.
잡스는 애플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냈다. 애플과 함께 온오프로 여러 해동안 일한 Chiat/Day의 전임 크리에이티브 부장인 켄
시걸(Ken Segall)의 말이다. "설마 CEO까지 관여하랴 싶은 일 세세한 부분에 모두 그가 관여했습니다. 아이콘처럼 된
'Think Different' 캠페인도 그가 주문했었죠." 이 때는 애플의 신제품이 소개도 되기 전이었다. 광고팀에도 소개를
안시켜주었고 말이다. 시걸의 말이다. "가령 잡스는 이런 식이었습니다. '네 번째 단락의 세 번째 단어가 맞지 않아요.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싶으실 것입니다.'"
큰 그림은 물론 작은 그림도 파악하는 경영법이야말로 잡스의 특징이다. 애플에 복귀한 직후, 잡스는 컴퓨터 업계에서 애플을
차별화시켜줄 것은 찬란한 디자인임을 깨달았다. 델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인텔과 같은 성공한 기업들의 디자인은 시시했다.
제품-디자인 컨설턴트 기업인 Ideo의 CEO인 팀 브라운(Tim Brown)의 말이다. 그의 새로운 책 "Change by
Design"에서 그가 한 말이다. "'제게 차세대 아이포드를 주세요.'라 말한 클라이언트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지만 작은
소리로 '제게 차세대 스티브 잡스를 주세요.'라 말하는 디자이너들도 거의 부지기수이다."
잡스는 또한 타이밍의 귀재이기도 하다. 애플이 아이튠스로 진입하기 전, 음반업계는 고유의 디지탈-음반 판매를 계속 실패했었다. 반면 애플은 음악 구매의 장으로서, 아이튠스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잡스는 아이튠스를 맥에서만 작동하도록 하는 것으로, 음반사들과 협상을 맺었다. 2002년 당시 맥의 개인용 컴퓨터 시장점유율은
낮은 한 자리 대였다. 아이튠스가 윈도용으로 나와서 거의 모든 PC시장으로 확대될 때까지, 맥의 낮은 시장점유율은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파괴적인 패러다임 변동보다 실험을 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Appetite for Self-Destruction"이라는 새 책이 있다. Rolling Stone의 필자인 노퍼(Steve
Knopper)가 쓴 책으로서, 음반산업의 악랄함에 대한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Universal Music의 수장인 더그
모리스(Doug Morris)가 한 말이 있다. "맥으로, 그것도 1년만에 애플이 어떻게 음반사업을 망쳐놓을 수 있는지 난 이해
못했소." 노퍼의 글이다. "이걸 왜 하면 안되었을까? 당시 스티브 잡스가 다가왔을 때, 잡스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상황을
알아차릴 정도로 그는 영민했을 따름이다. 잡스는 터프하게 행동했지만, 최근 아티스트들과 계약협상을 하는 거대음반사 변호사보다 더
터프하지는 않다."
잡스의 주요 사업 수단은 메시지의 완벽화이다. 그는 발표하게 될 애플에 관한 내용을 한 줄 한 줄, 계속 리허설한다. 잡스 외에 주어진 주제에 대해 발표할 수 있는 중역은 소수일 뿐이다.
잡스식 접근방법의 핵심은 그와 애플이 무엇을 말하느냐, 그리고 무엇을 말하지 않느냐에 대한 깊은 숙고이다. 하버드대학교 교수인
여피(David Yoffie)는 2007년, 아이폰을 발표한 뒤, 판매에 이르는 기간동안 전혀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을 흥분하게 만들어서, 무료 광고효과를 4억 달러 정도 받았다고 추측했다.
잡스 자신이 과도한 노출을 신중하게 피한다. 제품을 홍보할 때에만 말하기를 선호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는 2004년 당시의 암
수술조차 밝히지 않았다. 수술 후, 직원 전체 메일이라는 형식만으로 밝혔을 뿐이다. 전략적인 알림이었던 셈이다. 마찬가지로
최근의 병가도 직원 서한 형식으로 세상에 알렸다. 잡스 자신이나, 애플 사람 모두 추가적인 코멘트를 하지는 않았다.
애플 내 언론홍보팀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말을 할 수 없다. 이 팀은 잡스에게 직속으로 보고를 하는 팀이다. 애플은 이 기사를
위해 잡스가 인터뷰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거절을 하였지만 다른 이들이 잡스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은 허용하였다. 물론 다른
것에 대해서는 거절하였다.
이러한 비밀주의 때문에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들이 골머리를 썩힌다. 이들은 잡스처럼 중요한 CEO의 건강문제라면, 더 확실히 밝혀야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잡스는 애플의 전임 CFO와 법무실장을 스캔들에 휩싸이게 만든, 스톡옵션 백데이팅에 대해서도 침묵하였다.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애플이 옵션 행사일을 조정해서, 보다 더 이윤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사실을 잡스도 알고 있었다고 되어 있다.
잡스는 백데이팅에 대해 사과를 하였으며, 이에 대해 "전혀 애플다운 일이 아닙니다(completely out of
character for Apple)"라 하였다.
잡스는 재무와 메시지, 협상, 디자인 그 이상을 관리한다. 한 때 컴퓨터 업계의 무서운 아이가 이제는 유례없이 강력한 회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최근의 병가를 보면, 스티브 잡스도 인간일 따름이다. 그가 혹시 죽게 된다면 애플은 잡스 없이 어느 정도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Apple's future.
스티브 잡스가 공공석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지난 9월, 잡스는 애플의 한 중역 이름을 대며, 그에게 특별히 감사를 표하였다. 그의 이름은 애플의 수석경영자인 팀 쿡이었다.
새로운 아이포드를 소개하는 이벤트에서 잡스는 우선 언론 종사자와 분석가들, 애플 개발자들에게 자신이 "자동차 사고로 죽은
20대의 간 기증자가 기증한" 간을 갖고있다 발표하였다. 그러고나서 그는 쿡에게 감사를 표하고, 자신이 없을 때에도 애플을
유능하게 관리한 다른 경영진들에게도 감사를 표하였다. 쿡도 맨 앞줄에서, 팔까지 높게 올리며 열렬한 환영을 표하였다.
잡스가 복귀하자, 쿡이나 다른 누군가 잡스의 자리를 채울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은 일단 사그라들었다. 한 전임 애플 중역의
말이다. "애플에서 위계질서는, 스티브가 누구를 부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잡스께서 말씀하시기를'이 엄청난 가치를 갖죠."
계승에 관한 얘기를 싫어하기로 유명한 CEO인 래리 엘리슨은 자기 친구이기도 한 잡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를 교체할 수가
없어요. 그 자체가 엄청난 브랜드입니다. 엄청난 제품이기도 하죠. 그가 떠날 때마다 건강하게 은퇴하기를 바란답니다. 지중해에서
요트라도 몰기 바라죠. 물론 애플이 그를 엄청나게 그리워하게 되겠지. 애플은 소비자용 제품 회사에요. 제품 사이클이 무척 빠르단
말입니다."
잡스가 경영진들을 자기 없이도 잘 하도록 계속 가르쳐왔다는 신호도 있다. 애플 경영팀과 접촉하는 이의 말이다. "스티브처럼
생각하는 법을 계속, 완전히 훈련받아왔어요. 이 때문에 6개월이 그리 부드럽게 흘러갔겠죠. 누구나 비전제시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스티브라면 이렇게 했겠지.'"
사실 잡스의 영향력은 애플을 넘어선다. 레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은 최근 New Yorker지
에 잡스가 자기들의 영웅이라 말했다.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아마존에서 킨들 2를 선보였을 때, 잡스가 이를
질투했음도 분명하다. 벤처자본가이자 넷스케이프를 공동창립했던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essen)은 모험자본가들에게
잡스가 했던 말을 가끔 일깨운다고 말했다. "첫 번째 제품을 선보일 때 꼭 생각하세요. '스티브 잡스라면 어떻게 했을까?'"
향후 10년동안도 잡스는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다양하게 던져볼 것이다. 시가 1,500억 달러 어치가 넘는 회사를
만들고, 영화와 통신사, 음악, 컴퓨팅(그리고 세상에 소매점과 디자인의 중요성을 알렸다)을 전환시켜낸 자신이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비밀주의와 쇼에 대한 취향, 그리고 검증된 그의 영특함을 볼 때, 준비가 되었을 때에만 우리에게 알려줄 것이다. 그
정도로 생각하는 편이 낫겠다.
Reporter associate Doris Burke
First Published: November 5, 2009: 8:01 AM ET
인터넷 광고시장 나아가서는 뉴미디어 광고시장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기사 였습니다.
갱년기 우울증 빠졌던 마흔 때 인생 돌파구 찾기 위해 창업 어떡하면 잘 키우고 이끌까 '창업자의 病' 앓고 또 앓다 세계 최고 '미디어 파워'로 "미디어그룹 분열과 재편성… 대폭풍 불어닥칠 것"
▲
서울 여의도 TNS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난 마틴 소렐(Sorrell) WPP그룹 대표는 끊임없이 사업을 끌고나가야 하는 창업자의
고통을 '창업자의 병'이란 말로 표현했다. 그만큼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 그는 WPP그룹을 20여년 만에 세계 정상의 광고·마케팅
그룹으로 키워냈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오길비그룹, TNS, 힐앤놀튼, 밀워드브라운….
광고와 커뮤니케이션에 종사하는 기업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세계적인 광고·시장조사·홍보·마케팅 대행사들이다. 이 회사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WPP그룹 소속이라는 점이다.
브랜딩 :브랜드 위주의 마케팅(잠재 고객에게 브랜드에 대한 확고한 생각과 연상을 남겨 중장기적으로 꾸준하게 판매되는 제품을 만드는것)
기존의 브랜드 정의 : 제품이나 서비스의 차별화를 위해 사용하는 명칭,용어,심벌,디자인 또는 그 결합체
새로운 관점의 브랜드 정의 :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의 브랜드 정의를 말하며, 소비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연상의 네트워크
브랜드 실패이유
브랜드에 대한 부정적 연상과 생각을 지닌 소비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명확한 아이덴티티 정립 실패
의미없는 미사여구를 나열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설정
브랜드전략
잠재고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기업의 명확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정립
고객이 떠올리는 아이덴티티와 기업이 떠올리게 하고 싶은 아이덴티티를 일치시키기 위한 노력
브랜드전략의 a to z
아이텐티티와 리얼리티의 방향성이 동일하다는 전제하에 아이덴티티를 커뮤니커이션에 용이하도록 명확하게 정립하여 전달
reallity - 브랜드에 대한 실체적인 강 약점을 포괄함(정체성)
Identity - 우리가 어떻게 보이고 싶은가를 정리한 브랜드의 목표 이미지
image - 아이덴티티와 리얼리티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인식되는 브랜드 이미지
아이덴티티의 이미지화 : 광고등의 커뮤니케이션
리얼리티의 이미지화 : PR
개인 브랜드에 대해 적용한다면? : 내가 어떤 식으로 보이고 싶은 것 = 아이덴티티
아이덴티티의 3중 구조 C-E-D 모델
Core Association (Essence) : 특정브랜드를 연상시키는 한 두 마디의 핵심적인 연상 ex)나라는 사람을 다른사람이 떠올렸을때의 한 두 마디의 단어
Key Enablers : 소비자를 납득시키는 요소
Key Diffrentiators : 다른 브랜드와의 차별점
볼보의 예
브랜드 아이덴티티:정밀기술과 계속적인 실험을 통해 운전자와 운전자 가족에게 안심할수 있는 운송수단을 제공한다 리얼리티에 적용하기 위해서
Core Association : Safety
Key Enablers : 안전한 차를 위해서 수없이 실험한다는 이미지를 계속적으로 보여주며 강조한다
Key Diffrentiators : 그러므로 같은 연식의 차종중에서 중고값이 제일 비싸다는 것을 보여준다
볼보의 광고
SafetyPin(안전핀) 으로 만든 자동차 이미지 => 저렴한 비용으로 강력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영화 더락에서 조심스러운 캐릭터를 설정하기 위한 대사 "무서워 가기 싫어 난 차도 볼보만타." ==> 무비용 효과
1등 브랜드를 따라잡는 브랜드 전략
인생은 누가 더 대단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가의 싸움이다.
1등이가는 방법과 후발주자가 가는 방법은 틀리다.
소비자의 시각을 바꿔라 :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접근하는것은 결혼하는것과 비슷하다
소비자에게 처음 접근할때에는 브랜드의 이점을,소비자가 선택할 시점에는 그로인한 손해를 이야기한다. ===> 그러나 후발 브랜드의 경우에는 안된다!!!! ===> 선발브랜드와의 차이점을 이야기해도 효과없다
후발브랜드의 전략(전면전을 펼칠때) : 브랜드를 보는 소비자의 시각(View) 자체를 변화시킨다
예)이미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여자를 꼬실때 내가 그사람 보다 좋은 점 차이점을 이야기 해봐야 소용없 고, 여자의 남자 보는 시각자체를 변화 시켜야 한다(아...몰랐는데 이런모습이 더 남자로서 멋있게 보이네?)
1등 브랜드의 이유(History와 Story에서 앞선다)
History - 초기개척자로서의 역사성과 전통성을 가짐
Story - 끊임없는 브랜드 스토리 제공으로 소비자와의 유대 강화
NOKIA의 예) 노키아=Connecting People
셀룰러라는 영화를 보면 핸드폰이 주요 수단으로 나오지만 노키아의 상표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엔딩크래딧이 거대한 핸드폰 액정에서 흐른다.
후발주자가 따라 붙어야 할 방법(history에서의 보완)
돈 투입 : 차이가 별로 없다면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햇갈리게 만듦
new category :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듦 ex)1800CC 자동차는 준중형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든이유는 1500CC 고가형의 자동차를 판매하기 위함
sub category : 인식의 틈을 파고 듦 ex)fedex 의 delivery => over night delivery 로의 하위 카테고리 추가 => 시간이 지나면 상위 카테고리를 먹는다.
"인생은 당신의 숨쉰 양이 아니라 당신이 숨을 멎을만큼 짜릿했던 순간이다" ===> 히스토리 보다는 스토리!!! ===> 후발 브랜드의 기회는 소비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브랜드 스토리를 만드는 것에서 발생함
보기를 주지 않으면 소비자는 선택의 이유를 "그냥" 이라고 말한다.
예상을 뛰어넘어라. 배수의 진
후발 브랜드의 전략
소비자의 기대를 뛰어넘는 혁신적인 브랜드 스토리를 만듦(물론 브랜드에 가둬두는 후발 조치가 따라야 한다) ex)펌웨어 업그레이드 가능한 mp3 소비자는 버그가 있어도 허용해 준다
기존 업계의 상식을 공격 ex)최초의 편의점(소비자가 원한것은 아니다. 기존의 당연하다고 생각한것을 깨부수자)
후발 브랜드가 1등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우리의 브랜드와 그렇지 못한 나머지의 브랜드로 시장을 양분한다.
segmentation targetting 특별히.....한 우리와 그렇지 못한 나머지 잡것들로 세상을 둘로
쪼갠다. 가장 승부를 걸수 있는것을 기준으로 소비자의 인식을 2개로 나누고 그중에서 우리것을 좋아하는 것이 얼마나 되지?
ex)물이 좋은 HITE맥주
소비자는 자신의 needs를 확실하게 아는 경우가 없다
소비자의 View바꾸기 예)
KTF-show : 1세대(음성),2시대(데이터통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3세대는 우리의 시대다. ===>
기존의 브랜드를 버리고 SHOW라는(영상통화를 상징) 브랜드를 내민다. ===> 이제부터 기준은 영상통화 되느냐 안돼느냐
===> 영상통화를 안쓰는 사람도 show폰을 사용한다
자신의 브랜드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임을"
브랜드의 진정성 예 : 서울에서 제일 작은 중국집 - 자신없는 음식(양장피) 이라는 광고항목 - 진정성이 느껴진다.
브랜드는 약속이다. 힘들어도 꼭 약속한것 이상을 지켜야 한다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미션을 파악하고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선순환 구조
진정성을 위한 자세
경쟁을 보는 시각을 변화시켜라(소모식 경쟁이 아니라 콘서트나 콩클과 같은 경쟁을)
남다른 시각(2분법)을 가지고 내 이름을 걸고 목숨걸고 지키는 자세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기대를 넘어설 만큼 전력을 다한다.
예)새턴 자동차 - 소비자를 기쁘게 - 떄로는 넘어서는 약속이행->혼다차의 견인요청을 받아들인 예
입장을 바꿔보라 ex)price costco : 직원들의 특별한 경험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
사입하는 업체의 종류를 줄이고 물량을 늘려 볼륨 디스카운트 하여 가격을 내린다, 광고를 하지 않고 남은 비용을 가장 힘들게
일하는 유통업체의 직원에게 준다
진심은 결국 인정받음을 믿어라 ex)ebay - 사람은 선하다(특별한 통재를 하지 않아도 거래행위가 믿을수 있게 일어난다), 모든 사람이 정보에 동등하게 접근할수 있는 정보의 놀이터
책략에 의존하지 말라 ex)잔엔콕-보험사 -> 해지후 재가입을 늘상 요구하는 다른 보험사의 행태에서 벗어난다 => 불황시에도 30%이상 성장
Wobegon : Woe(근심,걱정) + be + gone(go의 과거분사) ==> 근심이 사라짐 이라는 뜻의 조어.
워비곤 호수 효과(The Lake Wobegon Effect) :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평균 이상의 수준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우리는 훌륭할 수는 있어도 완벽할 수는 없다!!!
워비곤 효과에 빠지지 않을려면 : 꾸준히 소비자와 직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소비자에게 약속을 지키는 경험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고객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믿을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라
브랜드를 만드는 자세 : 진정성을 바탕으로 고객의 삶을 어떻게 변화 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자세 ex)부억을 리모델링 하려는데 2가지 유형의 업자
선호하는 브랜드는? 예산은?
부엌에서 가족파티를 자주 하십니까? 부엌에서는 누가 자주 활동하십니까? ====> 현상적으로는 부엌을 리모델링 이지만 고객은 삶을 변화시키고 싶은것
브랜드를 만드는 자세 : 진정성을 바탕으로 고객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자세
Q&A
리얼리티와 아이덴티티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선 아이덴티티가, 경험의 확산이란 측면에선 리얼리티가 중요하며 리얼리티에는 명확하게 정리된 아이덴티티가 반드시 반영되어야 함
1위 브랜드의 전략
1위 브랜드는 경쟁을 넓은 시각으로 봐야 하며 트랜드를 선점할 수 있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1위 브랜드가 몰락하는 이유
경쟁을 좁게 본다
1위 브랜드는 만족하는 경향이 있는데...트랜드라고 확신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선점하는 뉴 브랜드를 만드는 자기 혁신이 필요하다 (ex 소주의 도수,워크맨 v s mp3)
권하는 책
기업경영과 전략적 사고 by 오마에 겐이치 전략의 본질, 경쟁환경을 해쳐나가는데 필요한 자세 , 생각을 구조적으로 하는 방법
아르바이트 하느라...간만의 포스트인데 이전 포스트의 2부를 덧 붙이는 수준 입니다..^^.
암튼 2부를 보고나서 느낀점은 글로벌 기업의 마인드를 엳볼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한가지 덧붙여 본다면 항상 공부하고 노력해야하고 긍적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변화에 대처해야 하는 우리 세대에 꼭 필요한 덕목은
일을 즐기는 것....그것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
소감:
"양극화는 정치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의 추세다." 라는 부분과 Global Standard에 대한 설명이 기억에 많이 남았습니다.작은 장사를 하던 그 무엇을 하더라도 경쟁자는 세계에 존재한다고 하는데...
하물며 세계적인 고도의 정신적 공동 결과물을 다루는 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업종을 가진자들이 있습니다.그들의 경쟁자는 누구일까요? Global Standard를 미국을 벗어나서 생각한다면 그 경쟁자들은 어디에 살고 있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그들은 변화를 주도하며 양극화 중에서 잘하는 편에서 열심히 뛰고 있을까요?
그렇다면 이 불확실한 시대에서 지속적인 변화에 적응하며 기회를 잡으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강의요약:
-양극화는 정치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의 추세다. 양극화 시대에 잘하는 쪽으로 가라. 그 차이는 점점 커진다.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 다양성을 인정하라.
-듀폰의 성장기 : 화약회사로 설립한 후 전쟁등으로 인해 큰 이득을 얻는다. 이러한 이득을 이용하여 새로운 물질(나일론등)을 만들어 나가는 세계적인 화학기업으로 변모시켰다.
-향후100년의 계획을 만들어 나갈때 기존의 이득에 머물게 된다면 미래는 없다.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세계는 지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반면에 준비하면 큰 기회가 있다. -무엇을 하던지 경쟁자는 전 세계에 존재함 -global standard란? 몇몇 국가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 하는 것이다. Yes/No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 스탠더드의 4가지 조건
최상의 윤리적 행동 : 시대에 따라 윤리기준이 변화하며 사회는 현재의 윤리기준에 맞는 사람을 원함
윤리기준에 대한 확실한 지식과 철저한 준수가 성공의 조건
안전과 건강
환경관리
인간존중
-6개월 룰 : 충격적인 상황 및 환경에서도 6개월 정도면 극복하고 적응한다. 어려운 것 일수록 도전하라 -문화적인 두려움 : 사람의 색깔이나 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머리속이나 가슴에 들어있는 것이 중요하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크게 당한다. -기업이나 개인의 지속가능한 성장의 조건
윤리:윤리적 기준이 따라가지 못 하면 100% 망한다
변화:안하면 꼭 망하고 하면 망할 확률이 줄어든다
창조:새롭고 차별화된 제품을 창조하지 못하는 기업은 실패한다.(PDP초기 600만원의 예에서 때지난 다음 200만원 받는 제품을 만들지는 말자)
환경:오륙도가 아니라 고령화 사회에서는 80대까지 일해야 한다.
-리더
경청과 존중 : 들을수 없는 리더는 리더로서 자격이 없다
스탠다드 확립 : 모든 사람의 말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자신의 스탠다드를 확립해라.
실천 : Walk the Talk (말한것을 실천하라)
-Q&A 1.말 잘 듣는 사람보다는 당돌하고 정중할땐 정중한 자기의 색깔이 있는 사람을 기업을 원한다. 2.인재선발기준이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인재채용으로 변함 인터뷰시 본인의 개성과 리더쉽을 당당하고 정중하게 표현하라 3.자신의 실패와 타인의 실패에서 배울점을 찾아라. 실패의 경험에서 배울것이 더 많으니 두려워 말고 도전하라 4.도전이란 70%의 성공확률을 가지고 하는 것 5.우리는 항상 차별을 받고 산다. 차별을 장애로 생각하지 말고 이용하라.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자신의 강점으로 만들어라. 6.이전세대보다 우리세대는 일생이 변화하는 시대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적응할수 있는 건강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살아야 한다. 어떤 기회에도 도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머리로 하려면 너무 많은 정보가 있기때문에 가슴으로 일하는 자세를 가져라. 도전해서 이길 수 있는. 7.눈앞의 보이는 산을 정복하기 위해 노력하되 계속적으로 준비하고 투자해라. 산 뒤에 있는 보이지 않던 더 큰 산을 오를 수 있다.
-추천도서:섬기는 리더 (켄 블랜차드) - 기준을 높여라 (히딩크의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이번주 EBS CEO 특강은 엔지니어 출신에서 성공한 CEO의 대표가 된 김영민 대표이사님이 나오셨습니다. 엔지니어로써 창업 이후 기업의 기반이 잡힐 때까지, 파란만장한 기업의 발전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신뢰라는 무형자산을 쌓기 위한 방법 또한 많은 점을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기업의 발전==
*엔지니어로서 시작 지점에서 대량생산의 위력을 경험하고 관련된 아이템을 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함. *기술에서의 자신감을 기반으로 창업을 선택. *기술적으로 접근이 쉬운 영역이지만 모두 상품성이 없다고 말리는 IPTV분야에 도전 *오랜동안 쌓아온 신뢰는 어려울때마다 큰 도움을 줌 *때맞춰 국내의 IT붐을 타고 기업이 성장 *현상유지를 위한 개발용역(IPTV 아웃소싱)을 수행하면서 기술축적을 했으며, 동시에 시장확대를 위한 멈추지 않는 노력(하나TV런칭,삼보컴퓨터인수등)을 수행.
==무형자산==
*개인과 기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무형자산 *사과를 반으로 나누어 친구에게 주고 먹는다면 나에게 남는 유형자산 외에 친구와 나 사이의 무형자산이 축적된다(무형자산의 장점을 강조) *돈만 보고 직장을 자주 옮긴다면, 소중한 무형자신이 붕괴한다.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무형자산이 생성된다. *신뢰는 개인의 습관과 가치관이 영향을 준다. *남과의 약속 나아가서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그 이유를 외부변수로 돌린다. *작은 약속의 어김, 작은 실패가 계속된다면 그것은 습관화된다. *신뢰의 함정도 있다(신뢰를 역으로 이용하는 사기 - 금융다단계등)
글쓰기에 대한 포스트를 찾다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 마소를 뒤적였습니다. 2004년도에 연재된 내용을 보다가 내린 결론은 "글쓰기는 어렵다..." 입니다.
사실 기본적인 맞춤법도 텍스트큐브에서 플러그인으로 제공하는 "맞춤법검사" 기능을 보면, 생각보다 어려운 게 한국어 맞춤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해당 플러그인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기는 조금 어려운 것 같은데 입력 중에 틀린 내용을 같이 볼 수 있게 개선하면
좋겠습니다. 시간 나면 한번 시도해 봐야겠습니다. 바르게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이해가 가지만 역시나 제게 글쓰기는 어려운
일이네요.
Technical Writing을 우리말로 번역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아마도 "기술적 글쓰기"라고 하는 것이 그나마 올바른 번역으로 생각된다.
Technical Writing이 대상으로 하는 문서는 각종 기술 문서, 보고서, 제안서, 논문등 실용문서이다. 실용문서는
문학적은 글과 달리 그 구조나 스타일이 정형화되어 있다. 또한 그 목적이 사실의 정확한 전달이나, 주장/제안의 논리적 기술을
통한 효과적인 설득이다.
국내에 Technical Writing에 대한 강의를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중의 한명이 임재춘 교수이다. 다음의 내용은 임재춘 교수의 강의를 간단하게 요약/정리한 것이다.
왼손 법칙을 명심한다.
엄지(0): 목적 / 상대 / 상대의 배경지식 / "왜" 형식논리 or "어떻게" 형식논리 검지(1): 주제 / 주장 중지(2): 근거 (이유: 왜?, 방법: 어떻게?) 약지(3): 증명 (자료, 의견에 따르면, 사실은, 예를 들면) 소지(4): 주제/주장 강조
[再錄] 정보는 크게 ‘인간정보’(Humint·Human Intelligence의 줄임말)와 ‘신호정보’(SIGINT·Signal Intelligence의 줄임말) 그리고 ‘영상정보’(IMINT·Image Intelligence)로 나뉜다.
이중 60년대 들어 그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한 NSA는 국방부
산하로 ‘신호정보’를 총괄 담당한다. 국방부 산하에는 이밖에도 국방정보국(DIA· Defence Intelligence
Agency), 국가정찰국(NRO·National Reconnaissance Office), 중앙영상국(CIO·Central
Imagery Office), 그리고 육해공해병대 등 각 군 단위별 정보부대가 있다. (한국에 파견된 대표적 미 정보부대로는
501정보여단이 있음.)
NSA, 인력만 3만8천명, 美 최대 정보기관
인력 면에서도 NSA는 석사급 이상의 학력을 가진 3만 8천여
명의 요원들이 근무하고 있어 美 정보기관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CIA의 경우 94년 예산액은 약 30억 달러, 인력은
1만5천 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NSA야말로 명실상부한 미국 최대 규모의 정보기관인 셈이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이들
정보기관이 한 해 사용하는 예산을 4백억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전체 미 국방예산(4천억 달러)의 10%에 달하는
금액이다.
NSA의 주요 임무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는 프로젝트는 바로
‘에셜론’(Echelon Project)으로 주로 고주파(HF) 통신 감청, 위성을 이용한 마이크로웨이브 감청, 해저케이블 및
인터넷 감청을 담당하고 있다. 에셜론 프로젝트는 1947년 영국과 미국의 비밀협정인 ‘UKUSA 협정’에 따라 1차 가입국인
영국(GCHQ)과 미국(NSA)외에 호주(DSD), 뉴질랜드(GCSB), 캐나다(CSE) 등 앵글로색슨계 3개국을 참여국(제2차
가입국)으로 하여 시작됐다.
이후 NATO를 포함해 한국, 일본, 터키(제3차 가입국) 등이
가입했다. 이 가운데 제1·2가입국의 경우 에셜론의 모든 감청 정보를 제공받지만 제3가입국의 경우 이전에 가입한 5개국과 달리
정보접근에 제한적이다. 따라서 그동안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받아온 대북정보의 경우도 1급 정보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에셜론이 처음 창설될 때는 지금처럼 강고하고 유기적인 조직은
아니었다. 그러나 1950년대 미국의 NSA가 출범한 뒤 양상은 달라졌다. 에셜론은 냉전기간 동안 끊임없이 새로운 첩보 기술을
개발하고 이 기술을 회원국에 공급했으며 이에 대한 대가로 회원국들은 대신 감청 기지를 공급했다.
현재 에셜론의 감청기지는 대부분 해당국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독일의 ‘바트아이블링’(Bad Aibling)과 일본의 미사와 등 군사기지를 이용하고 있으며 영국의
모웬스토(Morwenstow)감청기지의 경우 ‘영국통신정보부’(GCHQ)의 지시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지역별로
미국은 중남미, 러시아, 아시아, 중국 등의 정보 수집을 담당하고 있으며, 캐나다는 옛 소련의 북부지역, 영국은 유럽, 아프리카
및 러시아 서부지역, 호주는 인도차이나와 서아시아지역, 뉴질랜드는 태평양 서부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에셜론은 냉전기간 동안 발전해온 다른 전자 첩보 시스템과 달리
근본적으로는 실재하는 모든 국가의 행정부와 각종조직, 그리고 기업 등 비군사적 목표물을 상대로 설계되었다. 현재 에셜론은 음성을
인식할 수 있는 최첨단 도청장치 및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NSA는 전화, 팩스, 계좌추적, 전자우편은 물론 항공기 및
함정의 전파 등 지구상의 모든 통신을 추적, 감청 할 수 있을 정도의 막강한 정보수집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서 특정 단어 통해 발신자 추적
일례로 누군가 인터넷 메일이나 전화로 ‘폭탄’(BOMB),
‘테러’(TERROR)등의 단어를 사용하게 되면 즉각 에셜론의 추적 대상이 되며 이 정보는 적도 상공을 돌고 있는 스파이 위성을
통해 NSA본부(美 메릴랜드 주)로 보내진다. NSA는 또한 목표 건물 유리창에 레이저를 쏴서 안에서 나누는 대화 내용을
도청하는 장비도 보유하고 있다.
NSA요원들은 이 장비를 통해 대화로 인해 발생하는 유리창의 미세한 흔들림을 통해 대화 내용을 청취한다. NSA는 기발한 방식으로 난국을 타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신문에 테러리스트에게 공중 납치된 미국인 인질사진이
실렸다면, NSA기술진은 그 사진에 나온 테러리스트의 워키토키에 주목한다. NSA기술진은 외양만 보면 제품사양과 주파수 대역을
알 수 있다. 일단 실낱같은 단서라도 찾아내기만 하면, 단 몇 시간 안에 자체 제작한 도청장비를 현지에 보낼 수 있다.
이외에도 NSA는 특정인의 목소리를 사전에 저장해 놓고 해당자가
통신을 이용하는 순간 즉시 그 소리를 감지하여 기록하는 기능을 보유하고 있어 세계 주요 인물들의 전화도청이나 통신과정을 감청할
수 있다. 현재 NSA는 타국 암호체계를 분석하는 일 뿐만 아니라 자국의 암호체계를 만들고 보호하는 일도 한다.
예를 들어 NSA는 FBI요원들이 사용하는 도청방지용 주파수변환 전화기에 매일 다른 코드를 제공한다. 또 대통령이 핵발사 버튼을 누를 때 자기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를 입력하도록 돼 있는 암호코드 개발도 NSA가 담당하고 있다.
이 때문에 70년대 초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을 때 조사단은
문제의 도청 테이프에서 녹음이 지워진 부분을 복원하기 위해서 맨 먼저 NSA를 찾아왔고, 이란 콘트라반군 사건의 주역인 올리버
노스(Oliver North) 중령은 니카라과 반군에 지원할 무기를 입수하는 과정에서 NSA로부터 15대의 암호제작기계를
구해가기도 했다.
에셜론 국제 연대망에 속한 나라들은 모두 앵글로 색슨계 백인
기독교 국가들이다. 그런 만큼 이들 국가 이외의 국가들은 모두 도청과 감시의 대상이 된다. 이처럼 NSA의 활동이 무한정
팽창하자 1978년 1월 24일 민주당 출신의 지미 카터(삼변회·Trilateral Commission 회원) 전 대통령은
행정부 권한으로 NSA의 활동을 규제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시도는 4년 뒤 공화당 출신의 레이건 대통령이
무산시켰다. 레이건 대통령의 명령으로 NSA는 대폭적인 지원을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국의 인디펜던트지(紙)는 지난
200년 유럽의회에 제출된 보고서를 인용해 현재 120개가 넘는 위성을 기반으로 한 도청 시스템이 동시에 작동중이며 이를
운영하기 위한 비용만 한해 150억~200억 달러에 이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냉전이후 테러 및 경제 정보에 주력
최근 미 국방부는 전략계획 수립에서 정보전쟁에 대한 고려를
포함시켰고 NSA는 ‘정보전쟁지원센터’(IWSC)를 발족시켰다. 지난 90년대 이후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NSA의 목표 자체가
크게 바뀌었다는 점이다. 과거 냉전 시절에는 물론 러시아의 핵잠수함과 군 장성들이 첫째 목표였다. 그러나 이제 NSA는 훨씬
광범위하고 까다로운 영역을 개척해가고 있다.
국제무역, 아랍 테러리스트 그룹, 국제적 마약거래, 핵 확산 등이
그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NSA가 새로 맡은 임무들 중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분야가 경제정보다. NSA는 지금까지는 외국
기업의 상업비밀을 미국의 경쟁자들에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AT&T 전화기, 테네시 주에서 제작된
혼다 승용차의 시대에 NSA도 누구를 위한 스파이가 될지 누구를 감시할지 혼돈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NSA가
원칙 없이 도청을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기업에 손해를 끼치는 외국 기업의 불공정한 경쟁사례에 대해서만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일례로 지난 94년 美 군수업체 레이시온(Raytheon)사는
브라질의 큰 계약 건에서 프랑스의 톰슨(Thompson)사를 이겼다. 당시 NSA는 톰슨사가 브라질 관리들을 매수하려 한다는
정보를 레이시온측에 제공했다. 현재 에셜론은 미국의 외교정책과 세계의 경찰이 되려는 노력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에셜론이 수집한 정보는 미국에게 우호적인 국가를 지지해
주는데 이용되고 있지만 비우호적인 국가나 조직에 대해서는 반대의 힘을 작용시킬 수 있다. 바로 이란과 북한 같은 테러지원국가,
그리고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 조직이 이에 해당된다. 실제로 지난 2000년 9*11 테러발생 후 올해 상반기까지 미국과 유럽의
정보기관들은 100건쯤에 이르는 테러음모를 사전 준비단계에서 차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40건을 미국의 정보당국이 처리했다. 강화된 경계조치와
보안검색으로 일부 테러공격 계획들이 실행에 앞서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또 다른 여러 계획은 그 때문에 미뤄졌을 뿐 포기상태에
이른 것은 아니다. 그 동안 미국은 알 카에다 조직을 파괴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9·11 당시 약 4000명에
이르렀던 알 카에다 요원 가운데 80% 가까이가 체포되거나 죽임을 당했다.
이들을 국적별로 보면 102개국에 이른다. 남은 대다수는 지하로
잠복해 들어갔다. 현재 美 정보당국은 현재 알 카에다 잔존세력이 1000명을 넘지 않을 것으로 추산한다. 탈냉전 시대에 들어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자리 잡게 된 미국. 미국의 힘은 바로 막강한 정보력에서 나오고 있으며 여기에는 세계 최강의
통신감청시설을 운용하는 NSA가 있다.
-미국 NSA(National Security Agency · 국가안전국) -1952년, 트루먼 대통령이 미 국방부 소속 정보기관으로 발족 -통신감청을 통한 정보수집, 암호해독을 전문적으로 수행 -미국 메릴랜드주 포트미드에 '크립토 시티'(암호 도시)에 본부를 둠 -No Such Agency, Never Say Anything
▲ NSA의 위력
-현역군인 및 민간인으로 구성된 3만8천여명의 조직규모 -규모와 예산과 영향력면에서 CIA의 2배 -연방기구이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극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을 정도 -창설 30년 후에 비로소 존재만 알려짐(철저히 비밀) -1960년 소련 영공 미 U-2기 격추사건 고공첩보활동 -쿠바미사일 사건, 베트남 전쟁 등등의 결정적 역할
▲ NSA의 에셜론(Echelon) - 1
-통신 인공위성을 통과하는 모든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전화, 컴퓨터 등)을 도청하는 글로벌 도청 시스템
-UKUSA 비밀 협약(1947년) : “도청으로 수집한 정보를 공유한다”
=개발단계 : 1964년 12개 국가가 인텔셋(위성기구) 창립
1966년 최초의 인텔셋 위성 발사
1971년 영국 GCHQ, 미국 NSA 기지국 세움
=제1가입국: 미국의 NSA와 영국 QCHQ =제2가입국: 캐나다 CSE, 뉴질랜드 GCSB =제3가입국: 한국, 일본, 독일, 노르웨이 등등
▲ NSA의 에셜론(Echelon) - 2
-도청의 범위
냉전시대 : 군사용 외교 통신 도청 현재 : 산업스파이, 개인 사생활 도청 미국, 영국 등 주요 국가의 경제전에 유용하게 사용
▲ NSA의 에셜론(Echelon) - 3
-에셜론 도청 의심 사건
1. 1991년 켄두원전 3기 건설문제를 협상할 때 한국 외무장관을 도청 (에셜론에 참여하고 있는 캐나다 정보기관 CSE의 요원의 증언) 2. 서해교전 당시 스위스 제네바의 한 여성과 김정일의 통화내용을 취득 3. 박정희 대통령 집무실 도청 4. 한국의 원자력발전소 시공권과 관련한 한국대사관 도청사건 5. 교황, 테레사 수녀, 다이애나비의 통화
▲ NSA의 에셜론(Echelon) - 4
-데이터 수집 방식
1. 각 기지국의 사전(Dictionary) 컴퓨터는 수집한 도청자료에서 이미 설정한 키워드를 자동으로 검색 2. 수백만 건의 도청한 전자 메세지 형태를 띤 모든 커뮤니케이션에서 이미 프로그래밍 해놓은 키워드를 검색 3.
에셜론 키워드는 각 회원국의 관심사를 반영. 사람 이름, 선박, 단체, 국가명, 개인, 기업, 단체, 정부기관의 전화번호,
텔렉스, 팩스번호와 인터넷 주소 등등으로 모든 메세지의 모든 단어는 각 기지국의 딕셔너리 컴퓨터가 자동으로 검색 4. 키워드가 발견되면 즉시 관련 기관에 보내고, 정보는 NSA만 볼 수 있음
1600년대에 설립된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 1700년대에 세워진 최초의
지주회사 미시시피회사의 설립은 이후 세계사와 자본의 흐름을 서구로 바꾼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들의 역할을 역사적으로 고찰하자면
칼 마르크스의 ‘본원적 축적’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고 제국주의의 추악한 본질의 차원에서 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주식회사의 기능이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과제가 된다.
출자자 많을수록 안정성·이익 커져
당
시 서구 열강들은 인도와 중국 말레이시아 등에서 생산하는 향신료(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쪽 면화(영국 동인도회사)를 헐값에
빼앗기 위해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이것은 ‘동인도회사’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가의 이름이 아닌 민간 회사의 이름을
걸고 이루어진 일이다. 식민 지배가 이뤄지기 전에 국가에 앞서 민간 회사가 먼저 진출한 셈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국가 무력을 앞세워 점령하지 않고 민간 회사의 진출이라는 방식을 먼저 선택했을까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 보면 주식회사 체제의
명과 암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당시 후추는 금보다 비싸게 거래되고 있었다. 네덜란드는 이 후추를 싼값에 대량으로 수입하는 길을
찾고 있었고 영국은 직물 산업의 영향으로 쪽과 면화의 안정적인 공급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후추 면화 쪽 등을
원산지로부터 최대한 싸게, 대량으로 가져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오직 하나였다. 무력으로 원주민들을 압박해 그들의 가격 결정권을
박탈한 다음 빼앗은 물품들을 배로 실어 나르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무력을 동원했고 국가는 이를 승인했다. ‘우리는 전쟁
없이는 무역을 하지 않고 무역 없이는 전쟁도 하지 않는다’라는 동인도회사의 모토는 당시의 상황을 대변한다. 이렇게 무역은 최대의
이익을 남기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고 이런 ‘전쟁’은 현대에 와서도 단지 ‘총’에서 ‘금융’으로 수단만
바뀌었을 뿐 달라지지 않았다.
이쯤에서 17세기로 돌아가 보자. 한 명의 자본가가 향신료를 실을 몇 대의 무역선을
발주해 인도네시아로 떠날 선단을 꾸렸다. 그의 배에는 용병과 선원 그리고 상인이 타야 했을 것이고 또 후추와 바꿀 약간의 금과
은괴도 필요했을 것이다. 이쯤 되면 한 개의 선단은 어마어마한 자본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선단이 원주민을 총으로
위협하든, 그곳의 지도자를 금으로 매수하든 비싼 향신료를 값싸게 확보해 배에 가득 싣고 돌아왔다고 가정하자. 그는 그 향신료를
시장에 팔아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의 선단이 태풍을 만나 좌초하거나, 원주민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거나, 혹은 사우스 시(South Sea) 회사의 몰락처럼 배가 항구를 잘못 들어 화물이 모두 썩어 버렸다면 그는 파산하고
말 것이다. 즉, 이익에 대한 기대는 크지만 자칫하면 일거에 손실을 입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고민할 것이고 결국 자신과
함께할 동업자를 찾게 될 것이다. 즉, 수익과 위험을 나누는 위험 관리에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몇 명의 동업자가 같이
위험을 나누어 질 경우 그들의 선단은 비록 한두 차례 파산을 하더라도 다음에 새로운 기회를 잡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이들은 어차피 파산을 무릅쓰고 일거에 대박을 터뜨릴 경우가 아니라면 출항의 빈도를 높이는 것이 수익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소위 박리다매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이들은 다시 새로운 출자자를 찾아 나설 것이고 출자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이 선단의 안전성은 커지고 이익도 늘어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지만 출자자가 늘어날수록 의견 충돌이 생긴다.
봄에는 물품이 쉽게 상하므로 가을에 배를 보내자는 사람, 가을에는 태풍이 많아서 안 된다는 사람이 다툴 것이고 그 결과 최대
주주의 ‘경영권’이라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선단은 최대 주주의 의지대로 배를
띄우고 그의 판단이 틀리면 회사가 위기에, 옳으면 회사가 성장의 기회를 잡게 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주주가
늘수록 대주주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권한이 축소되는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이익도 잘게 나누어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이 오게
되고 그들은 이제 주주를 늘리기보다는 돈을 빌리기로 할 것이다. 즉, 차입을 하면 이익은 나누지 않아도 되고 이자만 지불하면
되기 때문에 자본의 희석보다는 차입에 주력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 선단이 향신료를 가득 싣고 돌아오는
날에는 주주들의 몫이 커지지만 만약 선단이 전쟁에서 패해 빈 배로 돌아오는 상황이 벌어지면 이들은 채권자들에게 빚을 갚기 위해
선단을 팔아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이렇게 힘의 균형이 만들어지고 체제와 질서가 갖춰지면서 주식회사는 지금의 형태로
자리를 잡게 된다. 즉, 주식회사는 많은 자본을 모아 이익을 올릴 수 있는 부분에서 가능한 한 최대한 이익을 늘리기 위해 조직된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이들 주식회사의 사익 추구 행위가 왜 국가 사회에는 이득이 되는지, 그리고 주주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주식회사가 사업을 통해 벌어온 돈이 매출액이고 매출액에서 원가를 뺀 것이 경상이익이다.
즉, 모든 이익에는 최우선적으로 원가가 공제된다.
원가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선단이라면 식량과 선상 생활에 필요한
도구들, 물물 교환할 다른 상품들, 배의 원료 등 많은 장비와 도구 상품들이 필요하다. 이때 이들이 구입한 원가는 사회적 자산
입장에서는 관련 업종들에 엄청난 여파를 미치게 된다.
두 번째 공제해야 할 원가는 임금이다. 선원, 군인,
상인들에게 보장된 임금을 주어야 한다. 임금 다음에는 돈을 빌려준 채권자에 대한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즉, 회계 용어로
차입금에 대한 상환(유동부채이건 고정부채이건)이 이뤄지지 않으면 출항 전에 약속한 대로 배를 빼앗기거나 주주들의 집이나 토지가
경매에 넘어갈 것이다.
주주 의견 차이가 증시 잉태
그리고 나머지 이익, 즉 회계 용어로 ‘법인세
차감전 이익’에 마지막으로 ‘관세’가 있을 것이다. 관세는 17~18세기에 서구의 왕가들이 직접 나서서 식민지를 지배하기보다
상인들이 나서서 자본의 논리로 부를 확장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이유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성공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 군사적 패배에 대한 부담도 없어 훨씬 더 나은 선택이었다.
이 모든 비용을 제하고 남는 것이 바로
순이익이 된다. 하지만 순이익도 주주들의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 벌어들인 돈으로 차라리 배를 더 만들자는 사람과 이익을
나눠달라는 사람이 엇갈릴 것이고, 대주주는 대개 차입금을 빌려서 괜히 이자를 주느니 차라리 이 돈을 모아뒀다가 선단을 키우자는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당장의 이윤보다 나중에 훨씬 큰 자본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하간
이익을 나눠가지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선단을 늘리는데 투자할 것인가는 늘 고민거리다. 공급이 풍부해져 향신료의 가격이 떨어지는
상황이라면 배를 더 늘리는 것은 어리석은 결정이고 선단이 향신료를 넘어 커피와 담배 등을 발굴하고 그것이 새로운 이익을 창출하면
선단을 늘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런 판단의 차이에 불만을 느낀 주주들 혹은 중간에 돈이 필요한 주주들은 자신의
지분을 누군가에게 넘기려는 욕망을 느끼게 되고 이때 이 지분의 위조 여부를 검증하고 지분의 소유권을 공증해 줄 중개자가 필요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증권 시장의 효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주식회사에 대한 투자에서 이익 배분(배당) 못지않게 자본 차익이 더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내내 이 자본 차익과 배당의 문제에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
러면 지금 2008년 1월 대한민국의 주식 투자자들은 어떤 판단을 하고 있을까. 우리가 떠나보낸 선단이 여전히 향신료와 커피,
차를 가득 싣고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을까. 아니면 지금 저 멀리 바다에 몰아치는 태풍에 선단이 난파할 가능성이 크다고 여기고
있을까.
댓글을 달아 주세요